조지 부시 아버지 부시 업적

조지 부시 아버지 부시 업적



2012년 혈관 파킨슨증후군 투병 사실을 공개했다. 지난 4월 92세를 일기로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바버라 여사 사이가 좋았다. 1945년 1월 결혼해 슬하에 4남 1녀를 둔 두 사람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73년) 결혼 생활을 이어온 대통령 부부라는 기록도 남겼다. 부시 전 대통령은 부인이 사망하고 7개월여만에 별세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냉전에 마침표를 찍은 인물이다. 


정치 명문가인 부시 가문의 수장이다.




그는 1924년 6월 12일 매사추세츠 밀턴에서 주(州) 상원의원 출신 은행가인 프레스콧 부시와 도러시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명문 필립스 고교를 졸업하고 동부 아이비리그 명문인 예일대학의 입학허가를 받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라는 가풍에 따라 당장 예일대에 입학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원 입대해 해군 항공모함 뇌격기 조종사로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다. 


입대 당시 그는 18세로 미 해군 최연소 전투기 조종사가 됐다.




1944년에는 태평양에서 어뢰폭격기가 일본 방공포에 맞아 격추되어 낙하산으로 탈출, 바다에 표류했고 잠수함에 구조되기도 했다. 그는 2차 대전에 참전한 미국의 마지막 대통령이다.


1948년 예일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1953년 텍사스 주 휴스턴에서 석유 회사를 공동 창업해 경영했다.


1966년 하원의원 선거 텍사스 제7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의해 유엔 대사로 발탁된 이래 공화당전국위원장(1973∼74년), 국무부 주 베이징 미국 연락사무소장(1974∼75년), 중앙정보국(CIA) 국장(1976∼77년)을 맡았다. 


주중 연락사무소 초대 소장을 맡아 양국 외교관계 수립했다. 레이건 당시 후보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된 그는 레이건 대통령 재임 8년간 부통령으로 함께 했다.


1988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민주당 후보였던 마이클 듀카키스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듬해 제4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라크에 침략당한 쿠웨이트를 해방한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걸프 전쟁에서 약43만 명의 대군을 파병해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이라크전 승리 후 전임자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지만 이후 경기 침체와 만성적인 재정 적자 등 국내 경제적 요인으로 민심을 잃어 1992년 대선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져 재선에 실패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1989년 12월 미·소 정상회담을 통해 40여 년에 걸친 냉전의 종식과 동서 화합을 선언했다.


장남 조지 W. 부시를 제43대 대통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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